어쩌다보니 15년 가까이 한 기관에서 같은 인터뷰 내용으로 부모님을 만났었다. 또 어쩌다보니 매년 같은 나이대 아이들과 부모님을 만나기도 했고.
인터뷰의 주요 목적은 아이의 어린시절과 현재의 반응, 행동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이었지만,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데 어찌 목적한 바만이 오고갈까...
그 세월 사이에 오는 아이들과 부모님의 세대가 달라졌고, 나도 달라졌지만, 꾸준하게 변하지 않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부모와 아이의 사이를 가로막는 '부모의 책임감이라는 눈가리개'였다.
주요 레퍼토리는 이러하였다.
"아이가 뜻을 알고 한 단어들을 말하기 시작한 게 몇 개월부터였어요? 동사를 포함해서 두 단어 이상 연결해서 짧고 간단한 문장을 쓰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였나요?"
언어 발달은 중요한 지표이기 때문에 묻는 것이고,
이 질문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충분히 교감을 했다고 생각하는데도 여전히 종종 듣는 대답은,
"..... 생각해보니 제가 너무 다 해줘서 아이가 말을 할 필요가 없었던 것 같아요."
비슷한 예로,
"아이가 필요한 게 있을 때 소리나 말, 눈짓으로 요구했어요? 소리만 냈나요, 소리를 내면서 눈을 맞췄나요? 장난감을 내려야 하거나, 책을 읽어달라거나, 냉장고에서 먹을 걸 꺼내야 한다거나 할 때요."
"..... 저랑 할머니가 아이가 요구하기 전에 필요한 걸 다 해준 거 같아요."
내가 아이를 키워보지 않았을 때엔, '그런가보다..' 하고 '기회가 없었다' '해당없다' 정도로 기록하다가,
어느 순간엔 "아놔, 엄마 고백성사는 필요 없고, 아이 발달 정보가 필요하다고요~" 하고 속으로 짜증도 냈으나,
내 앞에 앉아 눈물 찍는 엄마의 마음에 대체로 나도 눈물이 났다.
많은 시간이 흐르고, 나도 엄마가 된 후에는, 달래기도 하고 위로하기도 하고 짚어주기도 하면서, 정해진(구조화된) 인터뷰 짬짬이 부모와(주로 엄마와) 대화했다.
"어머니, 보통 아이들이 요구할 필요가 없을 만큼 미리 다 해주는 건 거의 불가능해요. 아이들의 요구라는 게 보통은 한도끝도 없거든요."
"당시에 그렇게 하신 게 아이를 촉진하진 못했을지 몰라도, 지나간 시간 후회하는데 에너지 쓰시는 거보다는 이제부터 알고 잘 해보자! 하는 마음이 필요해요."
"지금은 일단 원인보단 행동에 집중해볼까요?"
수백명 만나는 동안 다섯 손가락 안에 꼽았던 아버지 주양육자들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던 걸 보면,
우리 사회에서 양육자에게 기대하는 부적절하면서도 과한 측면이 분명히 있지만,
만 3세까지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는 둥 하는 엄마와의 애착 신화에 주로 뿌리를 둔 압박이다.
내가 막 일을 시작할 즈음 너도 나도 유명한 의사에게 가서 받았던 '반응성 애착 장애'는
엄마가 일하면 일한다고, 일 안 하고 키우면 안 놀아준다고 혼내는, '기승전-엄마비난'의 다른 이름이었다.
(몇 년 후에는 아빠를 같이 혼내는 양상으로 변신했다고는 들었다.)
엄마가 상처받는 결과뿐 아니라,
아이를 무조건 사랑으로(?) 다 받아주라는 해결책까지 내려
많은 아이들의 중요한 성장 기회를 박탈했던...
우리 아이들에게는 전쟁이나 학대 수준의 결핍이 아닌 이상
적응하고 살아낼 수 있는 힘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나서야
'어쩐지' '아하' 싶은 생각이 들었더랬다.
내 아이지만,
한발 물러나서 독립적인 대상으로 대할 때,
내 눈을 가리는 책임감이라는 안대를 좀 벗고
'넘이다~' 생각하고 쳐다볼 때
우리 관계가 훨씬 건강해진다고 생각한다.
내 비록 '보이마마'라는 치욕적인(?) 평가를 아이에게 들은 적이 있지만 ㅎㅎ
기억하고 꾸준히 연습하면
아니될 것이 없다는.
'호숫가 버드나무 아동가족연구소'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증상'과 더불어 살기 (0) | 2019.12.03 |
|---|---|
| 동네 임상심리사입니다. (0) | 2019.11.29 |
| 뉴욕타임즈 오피니언] 8월 생일과 ADHD 진단 (0) | 2019.02.07 |
| 한석봉 어머니는 떡을 썰었습니다. (0) | 2019.01.29 |
| 열린 상담실 (0) | 2019.01.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