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아이가 오더니
“엄마, ㅇㅇ 엄마가, 엄마 무슨 아동 발달 그런 거 하냐고 그러던데?”
“그래서?”
“아니라고 했지?”
“맞는데?”...
“아 그래?”
한 일이 있었어요.
내 아이도 모르는 내 일 ㅎㅎ
도대체 니가 하는 일이 정확히 뭐냐, 당신을 뭐라고 소개해야 하느냐 하는 질문들을 받아도
정확하게 콕 집어 대답한 적이 별로 없습니다.
나에 대해 떠벌리기 부끄러워하는 성향과 별개로, 정말로 하는 일을 한 마디로 이야기하기 곤란하기도 해서 그랬어요.
기존의 직업군에 분명하게 속했으면 쉬웠을 텐데…
때로는 내 흥미 찾아, 때로는 바람 부는대로 흘러다녔더니 여기저기 경계를 넘나드는 잡종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한번 정리해보기로 했어요.
*아동가족학을 전공하고 심리평가를 하는 사람*
지금 하는 일과 관련 있는 첫 단추는 아동가족을 전공하면서 끼워졌습니다.
저는 관찰, 심리검사, 직관을 활용해 아이들을 이해하는 데 재능을 보였고 (정말로!) 저도 즐거웠습니다.
학과 부설 센터에서 일하던 시기예요.
나이도 어리고 경험도 적어서 미숙함으로 내가 힘들게 했던 아이와 부모들이 가끔 생각나지만…
경험을 밑거름으로 더 좋은 평가자가 되었다고 믿어요.
*줄타기를 잘 하는 조율자*
석사 졸업 후 작은 연구소에서 일하면서 작은 조직에서 일하는 은혜를 듬뿍 받았죠 ㅎㅎ
멀티플레이어.
심리평가는 심리평가대로 하면서, 장애/정서행동문제를 다루는 연구나 사업의 코디네이터 역할도 했어요. 이 일들은 시청, 교육청, 초등학교, 지역 병원들에서 일어났구요.
의사-간호사-복지사-행정가 사이에서의 줄타기, 의사-교사-부모-공무원 사이에서의 줄타기를 하면서
균형감각을 바탕으로 하는 조율하는 사람으로서의 장점을 발견했습니다.
그 사이에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일’이 큰 경험이 되었어요.
*질문하는 모난 돌*
심리학자, (정신과) 의사들과 주로 일하면서 수많은 의문이 올라왔습니다.
후에 내가 불편해하던 것들을 통틀어 ‘의학적 모델’ ‘의료화(medicalization)’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진단 기준은 누가 만드나요? 특이한 성향, 개성이라고 부를 수 있는 정도의 특성도 장애나 질병으로 불러야 하나요? 사람이 어떤 상황에서든 일관된 존재일리가 없지 않나요?
연구의 일환으로 계속 진단 보고서를 쓰면서도 마음 한켠이 불편했습니다.
더 나아지자고, 도움 받자고 진단이 필요한 거지… 진단만 주고 대책이 없으면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 거지?
*보건학에 한쪽 발을 담근 시간*
재미있게도 연구비를 받아오신 연구책임자는 미국의 인류학자셨고, 따라다니면서 의사나 교사들의 이야기를 귀담아 듣는 기회를 얻었어요.
그리고 그런 질문들에 대답해줄 수 있는 의료인류학이나 의료사회학이 있다는 걸 알아냈습니다. (혼자 파서 알아내기 어려웠어요… 알고 보니 존재하더라는요.)
처음 의료사회학을 접하고 외로움이 가셨어요. 우와 고민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있구나!
하지만 시간이 흐르니 또 올라오는 질문들.
실제로 고통받는 존재들을 관념적인 말들도 대체하고 있는 건 아닐까…?
*동네 임상심리사*
여차저차해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존재가 되어버렸어요. 하지만 그래서 보게 되고, 그래서 겪게 되는 일들이 있더라구요.
심리학을 전공하고 병원에서 수련을 받았더라면, 병원 밖 세상에 대해 고민할 확률이 줄었을지 몰라요.
보건대학원을 안 가고 아동학이나 심리학을 쭉 했더라면, 환경, 정책, 제도에 대해 덜 고민했을지도 모르죠.
그래서 정리한 제 정체성은 ‘동네 임상심리사’입니다.
문턱 낮은 곳에 머물면서 사람과 환경 사이에서 줄타기를 하는 사람.
필요한 정보를 필요한 곳에 유통시키고 함께 알아보고 고민하는 사람.
이제는 알아주시고 제가 필요한 일에 불러주세요. 조만간 출동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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