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말이 틀린 게 없어서 너무 화가 나!"
언젠가 아이가 씩씩거리면서 소리쳤습니다.
그 마음이 무언지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하고.
그냥 내가 아이를 상대로 너무 빈틈없이 굴었나,
하고 넘어갔습니다.
그 말이 무슨 뜻이었는지, 어렴풋이 조금 더 알게 해준 소설이
장강명의 '표백'입니다.
표백
장강명 저
이 소설은 파격인가, 도발인가, 아니면 고발인가
‘한국 문학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논쟁의 중심에 서게 될 뛰어난 작품’ ‘몇 년 사이 읽은 소설 중 가장 문제적인 작품’ ‘이 시대 텅 빈 청춘의 초상, 섬찟하면서 슬프다’라는 평을 받으며 제 16회 한겨레 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작가는 모든 틀이 다 짜여 있는 세상에서 옴짝달싹 할 수밖에 없게 된 젊은 세대를 ‘표백 세대’라고 칭한다. 소설의 주인공들은 어떤 것을 보탤 수도 보탤 것도 없는 흰 그림인 ‘완전한 사회’에서 청년 세대들이 할...
이제 나는 세상이 아주 흰색이라고 생각해. 너무너무 완벽해서 내가 더 보탤 것이 없는 흰색. 어떤 아이디어를 내더라도 이미 그보다 더 위대한 사상이 전에 나온 적이 있고, 어떤 문제점을 지적해도 그에 대한 답이 이미 있는, 그런 끝없이 흰 그림이야. 그런 세상에서 큰 틀의 획기적인 진보는 더 이상 없어. 그러니 우리도 세상의 획기적인 발전에 보탤 수 있는 게 없지. 누군가 밑그림을 그린 설계도를 따라 개선될 일은 많겠지만 그런 건 행동 대장들이 할 일이지. 참 완벽하고 시시한 세상이지 않니? 나는 그런 세상을 '그레이트 빅 화이트 월드'라고 불러. 그레이트 빅 화이트 월드에서 야심 있는 젊은이들은 위대한 좌절에 휩싸이게 되지. 여기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우리 자신이 품고 있던 질문들을 재빨리 정답으로 대체하는 거야. 누가 빨리 책에서 정답을 읽어서 체화하느냐의 싸움이지. 나는 그 과정을 '표백'이라고 불러. ---pp.77∼78
자식에게 더 좋은 조건을 물려주려고 애쓰는 부모에게,
젊은 세대를 이해하고 싶은 윗 세대에게 권하고 싶은 책입니다.
내 선택으로, 내 의지로 실패할 권리가 주어지지 않는 세상에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나를 헤치는 것밖에 없다니.
그것조차 실패로 보이기 싫어서, 가장 완벽하게 성공했을 때 실행하는 규칙이라니.
'섬찟하며서 슬프다'는 평이 제일 적절해 보입니다.
나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어 나를 헤치는 이야기는,
청소년 자해에 대한 이야기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자해할 때 살아있다고 느낀다'는 고백도(https://brunch.co.kr/@hash-on/13)
같은 맥락으로 읽혀요.
질문을 품고, 도전해 보고,
스스로 무언가를 메워갈 수 있는 기회.
다음 세대에 그 기회를 주면 좋겠어요.
일단 저부터도 주인이 되어 살아야겠어요.
*
2018년에 장강명 작가의 책을 여러 권 읽었습니다.
훅 밀고나가는 속도에 가끔 읽으면서 끌려가는 기분이 들지만,
내가 사는 시대의 이야기를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에 담아내는 매력에
읽고 또 읽었습니다.
픽션과 논픽션 사이, 소설가와 기자 사이.
그의 글과 그는 그렇게 위치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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