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가 기억나는 4월에 읽은 책들입니다.
장강명이 편집한 '한국 소설이 좋아서'에서 뽑아둔 목록 중에 하나였습니다. e북으로 구입해놓고 읽기를 미루다가 짧아진 구매 목록에서 무심코 선택했는데, 마침 4월에 읽게 되었습니다.
조선 시대에 관리들에게 녹봉을 주기 위해 전국에서 세금으로 거두는 쌀을 운반하는 배가 조운선입니다. 정조 시대에 조운선이 동시에 다섯 군데에서 침몰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 바다에서 배가 침몰합니다. 조사 후 단순 사고로 판명났으나, 또 다른 조사를 통해 실체에 가까워질수록 관련자들이 죽어 나갑니다. 배를 불법으로 개조해주던 노인의 시신이 어느 날 누군가의 기획으로 발견되고, 노인이 몸 담은 것으로 알려진, 정도령을 믿는 종교 무리가 범인인 것으로 상황이 흘러가는데... 낯 익은 이야기 구조입니다.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할 만큼 재미도 있었습니다.
김탁환 작가의 이전 시리즈는 알지 못했습니다. 조선 시대 실학자들의 모임을 배경으로 하는 추리물인데 현실과 멀지 않은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고 합니다. 드라마나 영화화가 많이 된 이야기들이라고도 합니다. 재미난 이야기꾼이라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셜록과 왓슨을 연상케 하는 파트너가 등장하니, 재미없기도 어려운 역사 추리 소설입니다.
장르물 소설가는 세월호를 이렇게 기억했습니다. 찾아보니 '목격자들'을 시작으로, 세월호를 다룬 이야기를 두 권 더 썼다고 합니다. 각자 자기 자리에서 자기 방식으로 세월호를 기억합니다.
" "...... 그러나 어두운 것, 궁핍한 것, 죽어 스러지는 쪽에 서는 것은 오직 현명한 군왕만이 감당할 수 있사옵니다. 사고로 목숨을 잃은 백성을 정성을 다하여 잊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옵니다. 앞장서서 망각을 찢어야 하옵니다."
입이 바짝바짝 타들어 갔다. 가슴 깊은 곳의 불덩이를 토하는 기분이었다.
"망각을 찢는다?어떻게 말이더냐?"
"대소 신료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미 이승을 떠난 열다섯 명의 이름을 말씀해 주셨으면 하옵니다. 그들의 이름을 기억해 주시옵소서. 그들의 삶을 기억해 주시옵소서. 그들의 꿈을 기억해 주시옵소서." "
"우리는 구경꾼이 아니라 목격자가 되어야 한다. 2015년 2월. 김탁환"
<당나귀 실베스터와 요술 조약돌. 윌리엄 스타이그 글, 그림. 비룡소>
함께 읽은 엄마들의 목소리가 먹먹해졌습니다. 눈시울도 뜨거워졌습니다. 어디에도 세월호를 연상시키는 단서는 없었습니다.
예기치 못한 사고로 어느날 사라진 아이. 그리고 때로는 담담하게, 때로는 슬픔으로, 때로는 포기하는 마음으로 지낸 엄마와 아빠의 일상. 홀로 바뀌는 계절을 견뎌야 했던 아이.
그 상황이, 그 이야기가, 그 그림이. 묵묵히 지켜볼수록 '느껴지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그림책의 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책이 두 군데서 출판되어 두 가지 판이 있습니다. 다산기획에서 나온 작은 판형, 비룡소에서 나온 큰 판형입니다. 저는 잘 알지 못해서 서점 사이트 제일 위에 뜬 다산기획의 것으로 구입했습니다만, 책의 크기만 다른 것이 아니었습니다. 번역이 다릅니다. 예를 들어, 전자에서 '비가 온다'면 후자에서는 '비가 주룩주룩 온다'는 식으로, 말의 맛이 다릅니다. 그림의 톤도 다릅니다. 계절과 시간의 변화를 느끼는 게 중요한 책인데, 눈에 띄게 차이가 납니다. 구입하신다면 비룡소 출판사의 것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
역사추리소설에서, 그림책에서 세월호를 만났습니다. 시간이 지난다고 잊혀지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내가 나이가 들수록, 내 아이가 커갈수록, 내 곁의 누군가를 잃어갈수록 더 기억이 진해지는 것도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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